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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를리 마르스와 현대 조경 건축의 탄생

4분
부를리 마르스는 브라질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였다. 그는 자신의 조경 건축 프로젝트를 혁신에 대한 열망에 기초했고, 항상 토종 식물을 사용하기를 원했다. 그의 혁신 추구는 현대 조경 건축에 새로운 움직임을 가져왔다.
부를리 마르스와 현대 조경 건축의 탄생
마지막 업데이트: 27 6월, 2020

로베르토 부를리 마르스는 현대 조경 건축의 대부다. 그는 정원, 공원 및 열린 야외 공간을 디자인하는 혁신적인 방법을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부를리 마르스를 20세기 조경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보고 있다. 많은 건축가와 조경가들의 마음속에서, 부를리 마르스는 현대 정원의 창조자였다.

그는 단지 단순한 건축가가 아니라 뛰어난 조각가였고 그림, 목판화, 모자이크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다른 매체에서 일했다.

부를리 마르스의 어린 시절은 성인이 된 그의 직업적 경력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확실히 루초 코스타(Lúcio Costa)와 오스카르 니에메예르와 같은 브라질 건축의 거장들을 만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그에게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 주었다.

그는 나중에 여러 프로젝트에서 그들과 협력했다. 그의 아이디어는 유럽 여행과 함께 결정되기 시작했고 리우데자네이루 미술학교에서 더 명확해졌다.

브라질에서 마르스의 정원과 다른 열린 공간을 갖춘 디자인 프로젝트는 19세기 유럽의 낭만주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부를리 마르스는 조경 건축에서 표현력이 뛰어난 모양과 토착 식물을 사용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었다.

부를리 마르스: 예술에 헌신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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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상파울루에서 태어난 부를리 마르스는 6명의 자녀 모두에게 예술에 대한 사랑을 심어준 가족과 함께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였기 때문에 노래 수업도 했다. 아버지는 사업가였고 풍부한 예술 교육을 받는 데 필요한 모든 지원을 해주었다.

이러한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1928년부터 1929년까지 부를리 마르스는 베를린으로 갔다. 그곳에서 1년 내내 미술과 음악을 공부했고, 이 여행은 그의 인생에 중요한 시기였다. 그는 파블로 피카소, 폴 클라이, 와실리 칸딘스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발견했다.

과거로 돌아가면, 그의 가족은 1913년 리우데자네이루의 레메 인근으로 이주했다. 이 또한 그가 첫 번째 식물 채집을 시작한 곳이었기 때문에 그에게는 중요한 시기였다. 그때 그는 겨우 7살이었다. 식물에 대한 애정은 베를린에서 1년 동안 머물 때, 자주 식물원을 방문하면서 더욱 커졌다.

유럽에서 돌아온 후, 그는 리우데자네이루 미술학교에 등록했다. 그러나 로베르토가 그들의 교수법에 좌절하는 데는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의 후원을 받으며 자신의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그의 표현주의 시기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초까지 계속되었다. 이후 강한 유대감을 느낀 입체파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그는 1950년대에 기하학적으로 무한하고 유기적으로 영향을 받은 작품 중 일부를 작업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일이 색상으로 일어났다. 그는 훨씬 더 서정적이고 시적인 색채 체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정원은 미적, 소성적 의도의 복합체다. 그리고 식물은 조경 예술가에게 희귀하거나, 특이하거나, 평범하거나, 사라질 운명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색, 모양, 부피 또는 아라베스크다.”

-로베르토 부를리 마르스-

부를리 마르스의 주요 작품

코파카바나 보드워크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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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는 1970년대에 리우데자네이루에서 Avenida Atlancica와 함께 걷는 보행자 전용 도로로 시작되었다.

길이가 4.5km(2.8마일)로 코파카바나 해변보다 더 멀리 뻗어 있으며, 주변 지역만큼 넓다.

사람들이 해변을 즐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진 도시화 프로젝트였다.

부를리 마르스가 여기서 이루고자 했던 것은 그 길을 따라 걸어갈 사람들을 위한 유용성과 즐거움의 결합이었다.

즉, 그는 조경이 단순히 보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한, 사회적 기능을 가져야 한다. 부를리 마르스는 예술을 일반 시민들에게는 이질적인 도구가 아니며, 모두가 일상생활에서 즐길 수 있어야 할 도구로 보았다.

산책로 대부분은 보행자 전용으로 자갈로 되어 있다. 포장도로는 석회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추상적인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부를리 마르스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식물을 이용했다. 산책로를 따라 그런 지역들이 많이 있다.

조각가의 눈으로 특정 식물을 골라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견딜 수 있도록 했다.

플라밍고 공원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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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경 카를로스 라케르다가 브라질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플라밍고 공원 건설이 시작되었다. 이 공원의 특이한 점은 바로 물 옆에 있다는 것이다.

마침내 1965년에 문을 열었고, 그 이후로 이 공원은 계속해서 리우데자네이루 전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공원 중 하나가 되었다. 300에이커에 이르며 건축가 아폰수 에두아르도 레이, 호르헤 모레이라와 함께 부를리 마르스가 설계했다.

플라밍고 공원은 거대한 자전거 도로와 산책로가 있어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축구장과 농구장, 모형 비행기 비행을 위한 원형 지역 및 모형 배들을 위한 큰 연못도 있다.

그러나 이 공원의 진정한 매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식물들의 절대적 다양성이다. 부를리 마르스는 매우 신중하게 식물 종을 골랐으며, 대부분은 토착 식물이다. 그 푸르른 풍요로움은 공원에 많은 새를 불러온다.

파르케 델 에스테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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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에 부를리 마르스에 의해 디자인된 이 공원은 약 170에이커 넓이의 옛 식민지에 있다. 이 땅은 카라카스 계곡의 아주 아름다운 곳에 있었고, 칼로타 공항과 아주 가깝다.

부를리 마르스는 이 공간을 도시 전체에서 가장 훌륭한 조경 건축과 현대 예술 작품 중 하나로 만들기 위해 지역 기술자들과 함께 일했다.

그는 디자인에 열대 식물들과 토착 식물 종들을 사용했다. 장 아프와 같은 다른 현대 예술가들로부터 영감을 얻었다. 이것이 카라카스의 파르케 델 에스테를 현대 조경 건축의 절대 걸작으로 만드는 것이다.

부를리 마르스는 정원, 공원, 대로에서 활기 넘치는 토착 식물을 사용하는 것을 일반적인 관행으로 삼았다. 이 공간들은 브라질이나 라틴 아메리카의 어느 지역에서도 자생하는 식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외국식물을 사용했다. 사람들이 조경 건축에서 토착종을 더 자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덕분이었다.

또한, 그가 매우 훌륭하게 해낸 예술 형식 중 일부를 풍경 작업에 적용했다. 항상 아방가르드 조각의 생체 태를 좋아했으며, 미로, 칼더, 레거 등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장 아프였다.

보다시피, 우리는 현대 조경 건축에 관한 한 로베르토 부를리 마르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 많다.